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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한글 소설

삼국지 - 문추, 백마 벌판에 잠들다

by 이익의 소중함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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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벌판에 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문추는 말 위에서 창을 어루만지며, 아직 식지 않은 피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어제의 전투에서 안량이 쓰러졌고, 그의 투구와 피 묻은 갑옷이 아직도 군막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문추는 그 투구를 조심스레 들어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  
“형제여, 오늘은 내가 네 몫까지 싸우리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곁에 선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원소의 군막에서는 밤새 술과 한숨, 그리고 분노가 뒤섞였다.  
원소는 붉은 눈으로 장수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문추, 네가 선봉에 서라! 조조의 목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이 원소도 더는 하늘을 볼 낯이 없다!”  
문추는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주공, 이 목숨 다해 반드시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백마 전투의 아침,  
문추는 안개 속을 가르며 기병을 이끌었다.  
“하북의 문추다! 길을 비켜라!”  
그의 함성에 조조 군의 전열이 흔들렸다.  
창이 번개처럼 적진을 헤집고,  
말발굽이 진흙을 튀기며 적장 서황을 쓰러뜨렸다.  
피와 진흙, 절규와 환호 속에서  
문추는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깊이 적진을 파고들었다.

그날 벌판에는  
붉은 얼굴에 긴 수염을 휘날리는 사내가 있었다.  
관우였다.  
두 장수의 눈빛이 맞닿는 순간,  
벌판의 소음이 잠시 멎은 듯했다.

“문추! 네 목을 받으러 왔다!”  
관우의 목소리에 문추는 창을 높이 들었다.  
“관운장, 네 명성을 오늘 끝내주마!”  
두 장수의 말이 부딪히고,  
창과 청룡언월도가 번개처럼 맞부딪혔다.  
삼십 합, 사십 합,  
두 사람의 숨결이 하얗게 흩어졌다.

관우의 칼날이 번개처럼 목을 스치고,  
문추의 창이 관우의 투구를 스치며  
두 장수는 서로의 기백을 시험했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주변의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전장의 운명은 한순간에 갈렸다.  
문추의 말이 진흙에 발이 빠지며 크게 비틀렸다.  
관우의 칼날이 번개처럼 문추의 목을 스쳤다.  
문추는 말에서 굴러떨어지며,  
피로 젖은 창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의 시야에는 흐려지는 하늘과  
멀리서 들려오는 원소 군의 함성이 겹쳐졌다.  
‘주공… 이제 더는… 모실 수 없구나.’  
마지막 숨을 내쉬며,  
문추는 안량의 투구를 벗어 가슴에 안았다.

해가 저물 무렵,  
패잔병들이 문추의 시신을 찾아냈다.  
창을 꼭 쥔 손은 굳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엷게 남아 있었다.

원소는 그 소식을 듣고 군막을 박차고 나와  
하늘을 향해 칼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하늘이 어찌 내 팔을 꺾는가!”

그날 밤,  
장수들은 문추의 창과 투구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술을 뿌렸다.  
“형제여, 네 명예는 영원하리라.”  
안량이 없는 술자리는 쓸쓸했지만,  
문추의 이름은  
그 밤 이후로도  
하북의 들판과 병사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그날의 전투는 단지 한 장수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추가 쓰러진 자리에 남은 피와 진흙,  
그 위로 내리던 가을비는  
하북 군의 사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병사들은 밤마다 군막에서  
문추와 안량의 무용담을 나누며  
서로의 두려움을 달랬다.

문추의 어머니가 먼 길을 달려와  
아들의 유품을 받아들었을 때,  
노모는 말없이 그 투구와 창을 품에 안았다.  
“내 아들은 장부로 죽었구나.”  
그 말 한마디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원소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전투에 나섰으나,  
문추와 안량이 없는 군영은  
더 이상 예전의 기세를 되찾지 못했다.  
장수들은 밤마다  
두 영웅의 이름을 부르며  
사라진 용기를 되새겼다.

세월이 흘러 백마 벌판에  
작은 사당이 세워졌다.  
지나는 이마다 그 앞에서  
문추의 이름을 되뇌었고,  
아이들은 장난감 창을 들고  
“문추 장군처럼 되고 싶다”고 외쳤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었으나,  
그 안에는  
진정한 장부의 기개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명예가  
고요하게 남아 있었다.

문추,  
그 이름은  
패배한 장수가 아니라  
의리와 용기를 지킨  
하북의 마지막 용장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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